때는 1940년 5월. 이 시기에 큰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군사적으로 열세에 밀리고 있던 독일군이 프랑스 연합군의 방어선을 함락시켜버렸던 일이었죠. 당시 프랑스는 자국의 군사력 자체만으로도 독일이 이기기에 버거웠던 막강한 상대였습니다만,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까지 연합군으로 가세하고 있었으니 독일의 승산은 어려워보였습니다. 연합군은 독일의 뒤로 소련이 있는데다가 프랑스가 무너지면 뒤에 있는 연합국이 다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었으니 필사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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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프랑스는 고민을 합니다. 프랑스 국경지대가 독일과 넓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방어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었죠. 그나마 벨기에가 윗 부분에 끼어있어 충격 흡수를 해 줄 수 있었고, 가운데 아르덴느 삼림 지역이 천혜의 장벽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래 부분은 독일이 어느쪽으로 쳐들어올지 예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느쪽으로도 쳐들어 올 수 있었으니까요.

Maginot Line
Maginot Line, @Businessinsider.com

그래서 생각해낸게 방어진지 구축입니다. 위 그림의 적색 선이 그 유명한 마지노선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마지노선’이 바로 여기서 생긴 말이죠. 마지노 프랑스 국방성 장관(Minister of Defense André Maginot) 이 방어진지 구축을 지시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마지노의 선, 마지노선이 된 것입니다.

André Maginot.
마지노 장관 André Maginot

마지노선은 단순히 만리장성처럼 일렬의 성을 쌓아놓은 방식이 아니라 지역 특징에 따라 탱크 같은 대전차 공격에 취약한 지역은 이중철골벽이나 콘트리트 벽(무려 6미터짜리 직경의)을, 보병의 공격에 약한 지역은 철조망을 쳐 놓아서 방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지하로는 식량이나 무기를 조달할 수 있는 거대한 터널을 뚫어 연결을 했구요. 무려 10년간에 걸쳐 만들었답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탁 와 닿지 않죠? 사진 몇장을 보시죠.

http://www.uncp.edu/home/rwb/maginot_line_1944.jpg
http://www.uncp.edu/home/rwb/hst430_p2.htm

 


Inside a Maginot Line fort

벙커 하나를 공격할라 치더라도 근처에 있는 벙커에서 쏘는 총을 뚫고 나가긴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지하는 땅밑세계 수준으로 요새를 건설해 놓아서 물자의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노선은 아무리 막강한 화력을 가진 군대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위협이 되는 방어진지였습니다.

프랑스는 이러한 마지노선을 건설할 정도로 군사력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국, 네널란드, 벨기에까지 가세한 연합군이었습니다. 반면에 1940년 이 당시 독일의 재정 상태는 이미 파산상태였고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는 커녕 돈을 끌어오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독일군이 가지고 있던 팬저 탱크는 프랑스의 샤르B 탱크에 비해서 기동력은 다소 좋았지만(최고속도 38km/h, 샤르B는 28km/h 정도) 화력도 약하고 장갑도 얇아서 탱크전 자체만 놓고 봐서는 승산이 없어 보였습니다.

Char B Tank
Char B Tank

프랑스군의 샤르B탱크, 보기에도 무시무시합니다. 반면에 다소 가벼워 보이는 독일의 펜저 3호.

http://www.lonesentry.com/articles/armoredforces/german_panzer3_tank_panzer_iii_mark_iii.jpg
http://www.lonesentry.com/articles/armoredforces/index.html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프랑스 연합군은 6주만에 항목하고 말았습니다. 이 덩치 크고 무시무시한 화력의 연합군은 완전히 백기 투항을 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마지노선은 써먹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마지노선이라는 말은 아마 이 때문에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격전. 허를 찔린 아르덴느 산맥 기습

비밀은 두가지인데요, 첫째는 프랑스가 마지노선과 천혜의 방어진지라고 생각했던 아르덴느 산맥을 믿었고, 그래서 독일이 벨기에를 통해서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이 지역에 군사력의 상당부분을 포진시켰다는 점이었습니다. 독일은 황당하게도 아르덴느 산맥을 관통해서 쳐들어와 그 유명한 ‘전격전‘으로 기급 진격을 감행했던 것이죠. 독일군이 마지노선 등을 회피해서 공격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독일군은 물리적 섬멸이라는 방식으로 전방위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인데 프랑스 연합군은 아르덴느 산맥까지 넘어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빠른 무기를 이용하며 동시에 적군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전격전은 ‘상대의 의사결정의 흐름을 간섭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적군은 결국 의사결정 체제가 무너지면서 혼란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독일군의 승리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단순히 탱크의 속도가 다소 더 빠르다고 해서 화력과 수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라고 하기엔 어딘가 억측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쪽 다 ‘목숨’을 내 걸고 싸우는 전투이기 때문에 필사적이었을테니까요. 여기에 두번째 비밀, 오늘 이야기의 키워드가 되겠습니다. 독일군에게는 있었는데 프랑스군에게는 없었던 것. 이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무전기’와 ‘자율성’이었다고 합니다.

무전기와 자율성

프랑스군은 탱크 바깥에 있는 지휘계통에서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탱크는 화력수단이자 이동수단의 개념이었습니다. 탱크가 보병들을 이끄는 개념이 아니라 지휘계통이 탱크의 이동과 무력을 지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전략적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에 따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회사도 기본 컨셉은 크게 다르지 않죠)

그래서 프랑스 탱크는 그 무시무시한 위용과는 달리 가시거리가 150미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50미터 넘어에 탱크가 있어도 사령부에서 이를 모를 경우엔 속수무책입니다. 작전을 짜고 어디어디까지 탱크가 진격하라! 하면 예썰~ 하고 그리로 주르르륵 가고, 주위에서 보병이 호위하는 방식이었죠.

이에 반해 독일군은 ‘탱크 내에서도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전략은 이른바 ‘사전 계획’ 방식이 아니라 ‘실시간 조율’ 방식이었습니다.  탱크와 보병들은 미리 정해진 전략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전략을 조율하면서 움직였습니다. 즉, 전체적인 통제와 동시에 자율적인 의사결정으로 동적으로 변하는 전장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를 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이 일반화된 오늘이야 ‘실시간’이라는 개념이 아주 일반화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독일군에게 있어 전체적인 전략을 짜는 방식은 양군이 비슷했지만, 실제 전쟁터에서의 행동은 개별 행동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조율 가능하도록 무전기를 사용했었던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제멋대로 전개해 나가는 독일군에 프랑스군은 사분오열의 꼴이었습니다. 전폭기/전차/보병의 3요소가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자율적으로 각자의 전략을 수정해 가면서 움직이다보니, 프랑스군의 입장에서는 적군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수뇌부에서 작전을 지시할 때쯤이면 이미 적군은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니까요. 당시 공군력을 제외하고는 탱크의 화력이 가장 막강한 힘이었는데 프랑스 탱크는 실시간으로 통신하면서 조율하는 독일군 앞에서는 장님과 다를바 없었던 거죠.

6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 그러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많습니다.

 

복잡성의 허용과 자율적 권한

오늘의 시대는 명실공히 자율과 창의의 패러다임이 자리잡아가는 시대입니다. 갈수록 탑다운 방식의 거시적 계획과 전략은 생각만큼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모습은 점점 종잡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Birthday Paradox의 이야기처럼 복잡성은 증가하고 시장의 모습도 점점 예측이 불가합니다. 일사분란하게 이 산으로 갑시다! 하고 올라갔다가 어라 여기가 아닌갑다! 저 산으로!! 하는 방식으로는 목적하는 바를 점점 이루기가 어려워 질 것입니다.

이제 소통의 시대는 저물고 연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제한된 네트웤에서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 소통을 넘어 이해관계와 관심사에 따른 다양한 연결에 기반한 관계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함께 있지만 동시에 여러 군데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며 충성을 바치는 사회는 이제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조직에서 열정과 창의성을 외치지만 임직원들은 마치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삶의 의미를 찾아 불태우고 싶은 욕구를 가진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바야흐로 내 주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속 관찰하고 거기에 맞게 생각과 행동을 조율하면서 움직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휴… 피곤해,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살아. 너무 힘들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리있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불확실성 때문에 안정된 직장, 안정된 환경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업도 불확실성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꺼내 들기 보다는 파이 나눠먹기 식의 레드오션에 포지셔닝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일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이 불가능의 상황을 역전시켜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시간 시대에 맞는 ‘연결성’과 ‘자율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많은 조직은 프랑스 연합군처럼 자율성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잡성을 끌어안기 보다는 억제하는 쪽으로 모든 방향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부의 사람들에게 의사결정이 몰리게 되고 나머지 사람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배가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이 확산되고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경향은 커져가구요.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위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캐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2년까지 우리 사회를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는 ‘힐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내가 먼저 나의 관심사에 따라 무엇인가에 다가가지 않고서는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의 주체는 ‘We’가 아니라 Me 나 자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윗 사람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러다보니 맨날 ‘주인의식을 가집시 다’, ‘함께 위기를 극복합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열정을 창발시켜야 한다!’라는 형식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해야 할일이 명확하다보니 우리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변화를 느끼고 방향을 잡아서 움직여나가야 합니다. 연결과 조율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니… 혼자 조용히 살기보다는 ㅎㅎ 더 많은 사람들을 자꾸 만나시고, (회사 다니시는 분도) 회사의 업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세상 사는 이야기도 조금 더 많이 나눕시다. 어려운 경제 상황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뭔가 쌈박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말예요.

관심사와 목적에 따라
‘함께’ 연결하고 소통하고, 함께 ‘조율’해 나가면
이 두려움과 어려움도 훨씬 가벼워 질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http://mysite.verizon.net/vzev1mpx/maginotlineatwar/id15.html
http://www.mapsofworld.com/world-maps/world-war-i-map.html
http://user.chollian.net/~hartmann1/h-france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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